-
[Journal] 1738.3.5 믿음없는 삶에 대한 고민18세기 /1738 2021. 4. 6. 06:06
By whom (in the hand of the great God) I was on Sunday the 5th clearly convinced of unbelief, of the want of ‘that faith whereby alone we are saved’, with the full, Christian salvation.
Immediately it struck into my mind, ‘Leave off preaching. How can you preach to others, who have not faith yourself?’ I asked Böhler whether he thought I should leave it off or not. He answered, ‘By no means.’ I asked, ‘But what can I preach?’ He said, ‘Preach faith till you have it, and then, because you have it, you will preach faith.’*1738년 3월 5일 주일, (크신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피터 뵐러 때문에, 나는 **믿음없음(unbelief)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믿음없음"이라는 ****개념을 "크리스천에게 주어지는 *****완전한 구원"이라는 개념과 관련해서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고 있는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개념도 "크리스천에게 주어지는 완전한 구원"이라는 주제와 함께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 자신을 알게 되었다.
이런 확신이 드는 순간 곧바로, '더이상 설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너 스스로도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그런 네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냐?'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설교를 멈추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뵐러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뵐러는 '그만 두면 결코 안된다" 하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이런 내가 무엇을 설교할 수 있습니까?' 뵐러는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까지, 믿음에 관해서 설교하세요, 그렇게 해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그 다음에는, 믿음에 대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에 믿음에 관해서 자신있게 설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해 주었다.*1738년; 웨슬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목적이면, 1738년이 중요하고 그와 관련된 두번째 출판일기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1738.2.1부터 1738.9.16까지 일기를 묶어서 두번째 일기로 출판하였는데, 2~3년 동안 묵히고 간추리고 묵상하고 정리해서 출판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번째 일기에서 사용한 각종 용어와 사건들은 어느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신중하게 선택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그 기간동안에 웨슬리의 암호로 기록한 개인 일기가 역사 속에서 분실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암호로 쓴 개인 일기에는 자신의 행적과 각각의 행동에 따른 심리변화까지 시간별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일기를 간추려서 출판 일기를 다시 쓰면서 거짓으로 정리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컴퓨터와 데이터베이스 관리 능력이 발달한 21세기의 기술로 출판 일기에서 사용한 각종 용어와 개념을 분석하면, 좀더 분명하게 웨슬리의 진심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믿음없음(unbelief); "믿음없음"에 대한 설교는 이미 1736년 4월 16일에 확신에 차서 설교한 적이 있었다. 2년 쯤 지나서 지난 1738년 1월 8일에는 "믿음없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기도 하였다. "믿음없음"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뜻인데,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문제되는 상황이 생기면 내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를 "믿음이 없다"고 한다. 1738년 1월 25일에는 죽을 뻔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영혼까지 두려워 떨었다고 고백하면서 스스로 "믿음없는 자신을 보았다"고 고백하였다. 이때 이미, 자신에게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살아있는 참된 믿음"이라고 고백하며 기도하고 있었던 듯 싶다(1738년 5월 24일 일기에서 "a true, living faith" 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1738년 3월 5일이 되어서야, "믿음없음"을 "크리스천에게 주어지는 완전한 구원"과 관련시켜 본 듯하다. 이제 앞으로 웨슬리를 공부할 때는, "완전한 구원"과 "크리스천의 완전"에 관한 주제와도 연결해서 살펴보아야겠다.
1738년 4월 23일에는 고난당하는 상황에서 믿음이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믿음없는 나를 도우소서" 하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하고, 자신의 "믿음없음(또는 부족함)"을 일기에 기록한다. 이 날도 피터 뵐러에게 물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다른 사람 가르치는 행위를 그만 두어야 합니까?" 그 때 뵐러의 대답은 이랬다. '그러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마십시오.'
1738년 5월 13일 일기에는 피터 뵐러에게서 온 편지를 인용하면서, "믿음없음"으로 고민하는 자신에게 그 편지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를 털어 놓는다. 1738년 5월 24일 이후 고민과 확신은 그 때 일기를 번역하면서, 다시 정리해야겠다.
웨슬리의 일기를 읽을 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웨슬리의 출판일기는 웨슬리가 2~3년간 깊은 묵상을 하면서 다듬어 출판한 일기라는 것이다. "믿음없음"에 대한 고민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웨슬리을 많이 오해한다. 그 부분을 이해하려면, 웨슬리가 어머니를 방문해서 이야기 나누었던 1738년 6월 8일 일기(특히, 5월 24일 일기와 함께)와, 그 때로부터 1년 뒤에 다시 그 일을 회고하는 1739년 6월 13일 일기를 바탕으로 그 오해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영어 "was convinced"의 뜻과 문법을 분석해서 문맥과 함께 이해하면, convince라는 단어를 일부러 선택한 웨슬리의 생각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con(altogter, wholly) + vince(to conquer). 특히, 웨슬리의 일기와 설교와 편지와 각종 저작물에서 convince를 어떤 뜻과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를 분석하면, 더 선명하게 웨슬리의 생각을 추적할 수 있다. 참고로, 일기에서는 300회 이상, 설교에서는 180회 이상 사용하였다. 그 가운데서 "믿음없음(unbelief)"과 관련된 문맥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
****개념; 영어에는 없는 "개념"이라는 번역을 덧붙인 까닭이 있다. 웨슬리 본인이 직접 두번째 출판 일기에서, "개념"이라는 용어를 중요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어려운 용어를 최소한도로 사용하려고 절제하였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절제하는 목적은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서는 절제한 경우이지만, "개념"이라는 용어를 드러내면 좀더 그럴 듯하게 글을 포장하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진심을 이해하려면, 포장을 걷어내고 다시 읽는 신중한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이다. 웨슬리의 본래 저작에 제한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현실에서, 수 많은 다른 관점에서 웨슬리를 다시 읽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완전; "완전"이라는 용어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크리스천의 완전" 또는 "완전한 크리스천"은 웨슬리가 평생 고민했던 주제이다. "이름뿐이 크리스천"에 관한 설교와 "크리스천의 완전"에 관한 설교를 함께 읽는 것이 좋고, "크리스천의 완전"에 관해 쓴 평생에 걸친 저작을 찾아서 읽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출판 일기는 학문적이 출판물이 아니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다시 쓴 일기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18세기 > 1738' 카테고리의 다른 글
[Article] 웨슬리 회심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또 하나 (0) 2021.04.09 [book] 하이젠레이터의 평가 (0) 202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