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1761
[Journal] 1761.4.22 - 24 과학 문명을 염려하다/ 사랑이 더 좋다
매시간
2021. 4. 22. 07:00
Wed. 22. About noon I preached at Branthwaite, and in the evening at Lorton. Who would imagine that deism should find its way into the heart of these enormous mountains! Yet so it is. Yea, and one who once knew the love of God is a strenuous advocate for it.
1761년 4월 22일 수요일. (웨슬리 57세, 한국나이 59세였을때) 정오 12시 쯤, *브랜스웨이트에서 설교했다. 저녁에는 **로턴에서 설교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신론(Deism/理神論)이 이 거대한 산맥의 중심을 뚫고 길을 냈다! 정말 이렇게 길을 냈다. 정말이다. 한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던 사람이 이신론을 격렬하게 옹호하는 사람이 되었다.
*브랜스웨이트; 아침에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거리이다.
*로턴; 해발 고도 255m로 갑자기 높아지는 산악지대 한 가운데 있다. 길이 가파른만큼 2~3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리이다.
***이신론(Deism/理神論); "이성(합리적인 생각)"을 강조한다. 다양한 수준의 이신론이 있다. 웨슬리는 "이성"을 강조하지만, 균형을 잃고 이성을 맹신하는 이신론은 반대한다. (이전에 쓴 글, 웨슬리의 이신론 이해 (자료를 좀더 찾아서 쉽게 쓸 필요가 있는 글) )
****하나님의 사랑을 알던 사람; 이신론을 격렬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웨슬리가 볼 때, 사랑을 잃어버린 건 모든 걸 잃어버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거대한 산맥을 가로질러 길을 낸 엄청난 과학 문명(이성을 맹신하는 이신론) 앞에서, 웨슬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로턴으로 가는 길은 뻥 뚫렸지만, 사랑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였는가? 웨슬리의 문체에서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이 거대한 과학 문명 앞에서,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신론의 영향력을 과학 문명 전체의 영향력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좀 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에서 과학적 해결을 맹신하던 분위기와 과학문명이 발달하던 산업혁명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